브나로드 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436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1년 - 브나로드 운동 시작
전개 시기/일시 1932년 7월 23일 - 김상범 주도로 한글과 숫자 교육 시행
종결 시기/일시 1935년 6월 - 브나로드 운동 종료 선언
성격 계몽 운동
관련 인물/단체 김상범|신상균|동아일보사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동아일보사 주도로 전개된 계몽 운동.

[역사적 배경]

브나로드(V narod)는 제정 러시아 말기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들어가며 외쳤던 ‘민중 속으로 가자.’라는 뜻의 러시아어 구호이다. 1930년대 조선어학회와 언론계 등이 주도하여 한글 보급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특히 동아일보사가 브나로드 운동을 주관하고, 조선일보사가 한글 보급 운동을 주관하였으며 수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였다.

[경과]

1931년 동아일보사에서는 언론사, 천도교 등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농촌 계몽 운동의 흐름 속에서 브나로드 운동을 시작하였다. 브나로드 운동은 민족 운동의 활로를 찾는 과정에서 정치 운동을 보류하고 차선책으로 전개한 계몽 운동이었다. 1931년 최초로 시행된 브나로드 운동은 1934년까지 총 4회에 걸쳐 전개되었다. 충청남도 서천군의 브나로드 운동은 1932년 7~8월 활발히 전개되었다. 1932년 7월 23일부터 8월 4일까지 13일간 책임 대원 김상범(金商範)이 주도하여 한글과 숫자 교육을 시행하였다. 교육을 받은 어린이들은 남자 31명, 여자 6명으로 총 37명이었다. 책임 대원 신상균(申祥均)을 중심으로 한 학생들은 서천군 동면[현 판교면] 수성리상좌리에서 야학을 개설하였다. 수성리에서 30명, 상좌리에서 35명의 어린이가 야학에 참여하여 8월 15일 종료되었다.

[결과]

브나로드 운동 과 조선어 강습회 등이 전국적으로 큰 호응을 얻자 일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탄압하였다. 사설 강습과 민간 운동을 금지하였고 학생들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하였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 동아일보사는 1935년 6월 브나로드 운동의 종료를 선언하였다.

[의의와 평가]

브나로드 운동 은 1930년대 일제의 지배 정책이 점점 폭압적으로 변하는 가운데 대규모로 전개된 최후의 대중 운동이었다. 전 계층이 참여한 브나로드 운동은 서천 지역에서도 활발히 전개되어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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