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371
한자 歷史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범

[정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서천군의 역사.

[선사 시대]

충청남도 서천 지역의 역사는 구석기 유적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서천 지역은 바다와 강 그리고 넓은 평야가 있는 지리적 여건으로 구석기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 형성되어 있었다. 서천 지역에는 서천 추동리 유적서천 옥북리 유적을 통하여 구석기 유물인 찍개와 여러면 석기가 출토되었으며 같은 금강 생활권을 가진 군산 내흥동패총[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에서도 서천 지역과 비슷한 구석기 유적이 출토되어 구석기 시대 생활의 단면을 볼 수 있다. 구석기 유적 발굴의 측면에서 서천 지역은 이후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출토될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 신석기 시대에 가장 주목되는 것은 농경의 시작이다. 구석기 시대는 인류가 출현한 것이 중요한 시대상이라고 한다면 신석기 시대는 인류의 시원이라고 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서천의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장항읍 장암리에서 발굴된 신석기 조개더미나 마서면에서 확인된 서천 한성리 유적의 빗살무늬 토기편은 서천 지역에 다양한 신석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청동기 시대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안정성과 잉여 생산물이다. 서천 지역에도 청동기 시대의 유적이 확인된다. 대표적인 서천의 청동기 유적은 서천 봉선리 유적[사적]이다. 이외에도 20여 곳의 청동기 유적인 고인돌을 통하여 서천 지역의 청동기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고대]

초기 국가 시대에 들어서 점차 정치체들이 등장하였다. 마한 정치체가 존속하였던 서천 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은 주구토광묘이다. 주구토광묘는 토광 주변에 도랑을 파서 만든 묘제로 전라도와 충청도 일대 마한의 대표 묘제이다. 서천 지역의 경우 서천 오석리 유적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서천 지역은 한성기부터 백제의 영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웅진기부터이다. 사비기의 경우 서천 지역이 백제의 행정 구역상 설림군, 비중현, 마산현에 편제된 사실을 통하여 백제 시대 서천 지역의 중요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행정 구역의 구분은 서천 지역이 백제의 지방으로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음을 말하여 준다. 마한 세력권 내에서 백제와 목지국이 힘을 겨루던 시기 서천에서는 수준 높은 철기 생산 유적이 존재하였다. 한성기 초 서천 지역에는 아림국, 한산 지역에는 치리국국, 비인 지역에는 비미국이 마한 소국으로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가 목지국과 경합하던 시기 서천 지역에는 상당한 수준의 마한 소국이 웅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비기 서천 지역에는 2개 군과 예하 현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설림군은 오늘날 서천읍, 장항읍, 마서면, 시초면, 문산면 지역으로 비정되고 있으며 예하의 비중현비인면, 서면, 종천면, 판교면 지역으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가림군에 속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마산현한산면, 화양면, 기산면, 마산면으로 추정된다.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은 백제 시대 설림군의 지명이 통일 신라 시대에 서림군으로 변경되고, 조선 시대에 서천군으로 변경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1,500년이 넘도록 지명이 존속되었다는 것이 역사성을 증명하여 준다.

[고려 시대]

고려 시대 서천 지역에는 중요 인물이 다수 등장하였다. 서천 지역 출신의 이언충은 충선왕에게 공로를 인정받아 지서주사로 임명되어 서천이 승격되었다. 한산은 고려 시대에 이름이 붙여진 뒤에 지한주사로 승격되었다. 비인의 경우 가림현에 속하여 있다가 뒤에 따로 감무가 파견되었다. 한산 출신의 이색은 고려 말 대표적인 신진사대부가 되었고 이색한산백에 봉하여졌다.

[조선 시대]

조선 시대에 명칭과 행정 구역이 확정되었다. 1413년(태종 13) 서주는 서천으로 개칭되었고, 한산현은 한산군, 비인은 비인현이 되었다. 서천 지역은 고려 후기~조선 전기 왜구가 다수 출몰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읍치에 모두 읍성을 축조하였다. 특히 1419년(세종 1) 비인현에 근무하던 만호 김성길은 왜선 50여 척을 물리쳤는데, 특히 비인현에 자주 해적이 출몰하여 세종 대 비인읍성을 축조하기도 하였다.

[근현대]

대한 제국기에 들어면 한산 지역 출신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1850~1927]가 구국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하였다. 이상재는 독립협회에 참여하였으며 만민공동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독립협회 사건으로 구금되었고, 이후 개혁당 사건으로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서천군, 한산군, 비인군이 통합되어 서천군이 되었다. 1930년대에는 충청남도 유일의 무역항으로 장항항이 건설되었으며 장항선 철도가 충청남도 서해안 지역을 연결하여 주었다. 1938년 장항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36년 장항제련소가 설립되면서 장항은 광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광복 이후 1979년 서천면이 서천읍으로 승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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