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림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231
한자 興林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흥림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흥림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73년 7월 1일 -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흥림리에서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흥림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3.71㎢
가구수 78가구
인구[남/여] 115명[남 56명|여 59명]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에 나무가 우거져서 사람들이 들어설 수 없는 곳이라 하여 흥림(興林)이라 한 데서 흥림리(興林里) 이름이 비롯되었다.

[형성 및 변천]

삼국 시대 백제 비중현에 속하였고, 남북국 시대 통일 신라 서림군의 비비현에 속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임천의 비인현에 속하였다. 조선 전기 비인현에 소속되었으며, 조선 후기 비인군 이방면 지역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이후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흥림리, 동지리, 발계리, 석동리와 동면의 궁동리 일부를 합하여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흥림리로 개편되었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하여 종천면에서 판교면으로 편입되어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흥림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흥림리는 마을 남북을 서부저수지[흥림저수지]가 가로지르는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서부저수지복대리에서 발원한 판교천이 유입하여 모이는 곳으로, 유역 평야를 관개하고 있다. 서부저수지를 지난 판교천은 이후 서천 읍내로 남류, 종천면 장구리로 서류하여 서해로 유입한다. 흥림리의 북쪽 경계부에 턱골산이 있고, 동쪽으로 멀리 봉림산, 천방산의 능선이 형성되어 있다. 흥림리에는 띄울골, 뒤기실골, 하느머골, 부분골 등의 골짜기가 있다.

[현황]

2024년 현재 흥림리의 면적은 3.71㎢이며, 인구는 2022년 현재 78가구, 115명[남자 56명, 여자 59명]이다. 흥림리판교면 남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등고리, 서쪽으로 문곡리, 종천면 지석리, 남쪽으로 서부저수지, 종천면 지석리, 종천면 석촌리, 북쪽으로 후동리와 접하고 있다. 행정리로는 흥림1리, 흥림2리가 있다.

자연 마을로는 흥림1리에 띠울, 소야, 뒤실 등이 있다. 띠울은 모곡(茅谷)이라고도 부르는데,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풍취나대형의 명당이 있다고 하며, 마을이 띠를 두른 것 같은 지형을 하고 있다. 소야는 기름진 땅이 형성된 골짜기에 마을이 자리 잡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흥림2리에는 궁굴, 새터, 등지매, 터굴, 불무굴 등이 있다. 궁굴 또는 궁곡(宮谷)은 흥림에서 가장 큰 마을이며, 지형이 궁(宮)이 있는 마을 같다 하여 그러한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새터는 1925년 서부저수지[흥림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수몰된 지역의 주민들이 저수지 위쪽으로 이사하여 새로운 마을을 형성함으로써 붙여진 이름이다. 등지매[동지매 또는 동지리(冬至里)]는 조선 전기 일어난 사화로 유배된 한 선비가 도움을 받은 지역민들에게 은혜를 갚기 위하여 동지마다 방문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터굴은 백제 유민이 처음 정착한 마을로 오랜 역사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불무굴 또는 불문골은 지명 유래가 전하여지진 않으나,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은신처로 유명한 곳이다. 교통로로는 흥림리의 서쪽으로 서부저수지를 따라 국도 제4호[대백제로]가 남북으로 지나고 있으며, 마을 중심부로 장항선 철도가 남북으로 지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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