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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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舒川 乾芝山城 |
영어공식명칭 | Fortress guernse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건지산길 122[호암리 산4-2]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성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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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9년 - 서천 건지산성 발굴 조사 |
개칭 시기/일시 | 2011년 7월 28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서천 건지산성 사적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서천 건지산성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건지산길 122[호암리 산4-2]![]() |
성격 | 산성 |
양식 | 포곡식|테뫼식 |
크기(높이,길이,둘레) | 약 170m[높이]|1,384m[둘레] |
소유자 | 서천군 |
관리자 | 서천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에 있는 포곡식 산성.
[위치]
서천 건지산성(舒川 乾芝山城)은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건지산길 122[호암리 산4-2]에 있다. 서천 건지산성이 있는 곳은 건지산이 높게 솟아 있는 산간 지역이다.
[문헌 기록]
서천 건지산성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비롯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여지도서(興地圖書)』, 『호서읍지(湖西邑誌)』,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등에 기록되어 있다.
[형태]
서천 건지산성은 동벽과 서벽의 토층 조사를 비롯한 동문지(東門址)와 수구지(水口址) 등을 조사하려고 하였으나 동문지와 수구지는 이미 조사 전에 멸실되어 형적을 확인할 수 없었고, 동문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선 후기의 건물터 1동이 확인되었다. 서천 건지산성의 동벽은 길이 약 33m로 건지산의 동쪽 계곡 하단부를 포함하여 남북으로 펼쳐져 있다. 동벽의 남단은 테뫼식 산성과 접한다. 건물지는 산성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로의 북쪽에 인접한다. 건물은 기존의 동벽을 정지하고 축조되었다. 건물터의 기단석을 중심으로 내부는 위에서 아래로 경사지며 복잡한 층위의 다짐토를 이룬다. 이에 반하여 기단석 외부 토층은 2개의 층위가 두껍게 수평을 이루며, 서쪽으로 뻗어 있다. 건물터 내에서 확인 시설은 2조의 기단 석렬과 주춧돌 1매이다. 기단석렬은 모두 서쪽 일부에만 잔존한 것으로 남북을 장축으로 뻗어 있다. 건물터 내부의 주춧돌은 여러 매가 있으나 이 중 단 1매만이 정위치로 판단된다. 주춧돌은 할석을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평면 부정형이며, 지름은 약 80㎝이다. 건물터에서 출토된 유물은 기와를 포함하여 분청사기, 백자, 토기, 동전[상평통보] 등이 있다.
[현황]
서천 건지산성은 산 정상부[높이 약 170m]를 감싸는 테뫼식 산성과 경사면을 감싸는 포곡식 산성이 결합된 이중 성벽 구조를 지닌다. 테뫼식 산성이 폐기된 이후, 포곡식 산성이 축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성내에는 옛 건물터를 비롯하여 우물터, 군창터, 봉서사(鳳棲寺) 등이 있다. 서천 건지산성 발굴 조사는 1999년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에 의하여 진행되었다. 백제 말에서 통일 신라 시대에 축성되었다고 추정되나 발굴 조사를 통하여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1963년 1월 21일 ‘건지산성’이라는 명칭으로 사적 제60호로 지정되었고, 2011년 7월 28일 ‘건지산성’에서 ‘서천 건지산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서천 건지산성이 있는 지형은 충적지가 넓게 형성되어 취락에 양호하고, 멀리 동쪽과 남쪽을 경유하는 금강을 굽어볼 수 있어 해당 지역 거점지 역할을 하던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성벽 내에서 출토된 기와와 청자로 보아 12세기 이후에 조성되었고, 조선 중종 대 폐기된 것으로 판단된다. 서천 건지산성에 대한 고고학 자료와 문헌 자료는 귀중한 자료로 의의가 있다.